이렇게 만들고 있습니다

30년 만에 꿈꿔 오던 책이 나옵니다

여림재 2026. 5. 31. 14:29

여림재 첫 책 《AI 생존 지도: 질문 자본가의 시대》의 공식 발행일이 확정되었습니다. 6월 11일. 

 

그간 네 차례의 교정과 저자 교정을 거친 책이지만, 미더운 구석이 없는지 마지막으로 다시 살펴보고 있습니다. 엊그제 급하게 인디고로 제작한 책과 PDF 파일을 번갈아 보며 혹시나 있을지 모를 오탈자 확인과 레이아웃 점검 등을 하고 있는데, 역시나 수정할 곳들이 나오네요. ㅠㅠ

 

출간을 앞두고 이번 책은 언제, 어떻게 시작되었고, 현재까지 어떤 과정이 있었는지 그 비하인드 이야기를 들려 드리려고 합니다. 그런데 이 책에 관해서만 이야기하려니 여림재의 이야기, 편집자에 관한 이야기도 빼놓을 수 없을 것 같아 같이 적어 봅니다. 

 

이야기는 3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편집자는 언론사 입사를 목표로 4학년 2학기부터 시험 준비를 했지만, 뒤늦게 시작한 탓인지 성적이 잘 나오지 않고 있었습니다. 놀 거 다 놀고, 쉴 거 다 쉬니 성적이 오를 리가 없죠. 그날도 친구들과 당구장에서 시간을 까먹고 있던 중이었는데, 당구장에 있던 일간지를 잠깐 보다가 '그래, 이제 공부는 여기서 끝내자'란 생각이 별안간 들었죠. 일간지에 있던 출판사 입사 모집 광고를 보고 말이죠. 언론사나 출판사나 넓게 보면 같은 미디어 분야가 아니냐는 되지도 않는 이유를 붙여가면서요. 편집자는 어학 전공이었고 그 출판사는 공대 교재를 주로 내는 출판사여서 잠시 망설이기도 했지만, 전공불문이란 요강에 입사 서류를 냈습니다. 서류 전형을 통과하고, 영어 작문 및 번역 시험과 면접을 통과하면서 출판사 편집자의 30년 출판 인생이 시작된 거죠. 

 

그곳에서 8년간 있으면서 좋은 동료와 상사들과 나름 치열하게 일하며 편집 일뿐 아니라 마케팅까지 어느 정도 배울 수 있었죠. 그리고 그곳은 공대 교재만 펴내던 곳이었는데, 매출 확대를 위해 우리도 (당시에 유명했던) 영진출판사나 정보문화사처럼 IT 서적들도 펴내자는 제안서를 제출했더니, 그럼 제안한 당사자가 직접 맡아서 진행해 보라는 지시를 받게 되었습니다. 그때부터 IT 도서 기획 경력이 시작된 것이죠. 4~5년의 기간에 100여 종의 IT 서적들을 냈는데, 일부 히트한 도서들도 있지만, BEP를 겨우 넘기거나 모자란 도서가 대부분이었습니다. 그래서 '회사에 별 도움이 되지 않으면 나가는 게 맞다'라고 생각하고 사직서를 내고 독립을 하려 했습니다. 그런데 회사 대표님이 사직서 수리를 해주지 않아서 어정쩡하고 불편한 시간이 며칠 계속되었습니다. 안 되겠다 싶어 사직하려는 이유에 대해 몇 장의 손 편지를 써서 출근하시기 전에 책상 위에 올려두었더니 그걸 보신 후에야 "쟤 보내줘야겠다."란 얘기를 이사님으로부터 들을 수 있었습니다. IT 서적이 아닌, 옆집 아저씨, 아줌마, 조카 등도 볼 수 있는, 소위 단행본을 만들고 싶은 꿈을 그 편지에 녹였던 것 같습니다. 

 

그렇게 우여곡절 끝에 퇴사하고 1인출판사를 시작하려 했는데, 먼저 독립한 회사 상사로부터 함께 일해 보자는 제안을 받게 되었습니다. 새로운 곳에서 제가 만들고 싶은 책도 만들고, 지금까지 해오던 IT 서적들도 만들게 해줄 테니 함께 하자는 거였죠. 독립하자는 마음은 컸지만 준비해 둔 돈도 별로 없고, 좋아하던 상사랑 함께 재밌는 장면을 많이 만들어 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싶어 그곳에 합류하게 되었습니다. 그곳에서는 정말 1인 출판사처럼 일할 수 있었습니다. '일할 수 있었다'란 표현보다는 사장님과 편집자 이렇게 두 사람이라 '일할 수밖에 없었다.'란 표현이 더 맞을 것 같습니다. 사장님은 대학 교재 기획과 영업을 맡으시고, 편집자는 IT 서적 기획과 교정, 진행을 주로 했습니다. 거기에 새로운 출판 브랜드를 신설하여 일반 단행본도 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IT 원서 수입도 했고, 경리 업무, 도서 입고 및 출고 업무, 창고 관리까지 했으니 그야말로 일당백의 일을 했습니다. 그러면서 많이 배웠죠. 훗날 제이펍으로 독립할 때 든든한 자산이 된 시간이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그곳에서 새롭게 낸 브랜드의 책들 판매가 영 시원찮았습니다. 1만 부를 넘긴 책도 있지만, 몇몇 도서는 500부도 못 나간 채 창고에서 잠을 자고 있어야 했죠. 어느 날 사장님이 새 브랜드로 책을 내는 건 그만하고 IT 서적에만 집중하자는 이야기를 듣고 고민이 많았습니다. 고민 끝에 퇴사를 결심하고 제이펍을 차리게 되었죠. 

 

서울 행촌동 원룸에서 그렇게 시작한 제이펍이 벌써 18년이 되어 가네요. 그간 꾸준히 만들어 오던 IT 서적으로 어느 정도 밑자본을 만든 뒤에 만들고 싶은 단행본을 해보자는 심산으로 시작했었습니다. 그런데 다른 곳보다 빠르게 준비한 모바일 개발 서적들의 판매가 휴대폰의 급격한 보급 영향으로 너무 좋은 거였습니다. 모바일 서적에서 다양한 IT 분야의 서적들로 확대하고, 원룸과 아파트에서 일하던 1인 출판사는 4년 만에 파주 출판단지에 사무실을 내고 직원들이 있는 출판사로 커나갔죠. 그렇게 회사의 몸집을 키우면서 오랫동안 꿈꿔 왔던 책은 계속 미뤄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렇게 나이 들어가면 안 그래도 시원찮은 감각은 더 떨어질 테고, 사람 만나는 데에도 어려움이 있을 것 같아 지난 21년에 드디어 여림재란 출판 브랜드를 등록해 뒀습니다. 그.러.나 회사 대표로서의 일도 여간 많은 게 아니었습니다. 그렇게 한 해 두 해 흐르다 이제 더는 미뤄서는 안 되겠다 싶어 작년 시월에 마침내 첫 책 기획을 준비하게 되었습니다. 그간 틈틈이 메모해 뒀던 출간 기획 아이디어들을 쭉 살펴보았지만, 지금 바로 진행하기에는 여러 난관이 있어서 새로운 기획을 준비해야 했습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이긴 하지만 그 당시 편집자는 빠르게 발전하는 AI를 보며 불안감이 커지던 때였습니다. 개발자들이 책을 통해 배우고 업무에 활용하는 방식에서 AI에게 물어서 코딩하고 물어서 해결하는 식으로 바뀌면서 개발 서적들의 매출이 급격히 빠지고 있었고, 앞으로 어떤 부류의 책을 만들어가야 할지에 대한 근본적인 고민을 해야 하던 때였습니다. 그리고 편집자 개인 차원에서도 10년 뒤 어디서 무얼 하고 있을까에 대한 고민도 깊어졌고요. 이 고민과 불안감은 나뿐만 아니라 이 시대를 살고 있는 다른 분들도 느낄 것으로 생각했고, 이에 대비할 수 있는 책을 만들면 좋겠다란 생각까지 이어지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기존 제이펍의 작가님들 중에서 이런 책을 잘 써주실 작가님을 먼저 찾아보고, 안 되면 외부에서 찾아보는 식으로 진행하려 했었습니다. 그런데 운 좋게도 제이펍의 작가님을 바로 섭외하게 되었습니다. 개발 경력 30년이라 IT와 AI에 대한 이해도도 높으시고, 브런치 금상을 받을 정도로 글도 잘 쓰시고, 인문학적 소양도 갖추신 이석현 작가님이 보였고, 1순위로 정하고 연락을 드렸습니다. 그랬더니 마침 기다렸다는 듯 편집자의 제안에 100% 공감하신다며 비슷한 고민을 작가님도 당시에 갖고 계셨다면서 편집자의 제안을 구체화해서 집필계획서를 보내주셨고, 편집자도 그 집필계획서에 만족하고 기획서를 작성하여 책의 방향을 정한 후 계약을 진행하게 되었습니다. 

 

처음 작성했던 기획서와 달라진 곳도 있긴 하나, 대체로는 기획서의 설계대로 잘 이어온 것 같습니다. 가장 큰 변화는 제목이네요. ㅎㅎ. 'AI 혁명을 대하는 한국인의 자세(가제)'에서 '교양, 자산, 커리어가 달아지는 AI 생존 지도'로, 다시 최종 제목인 'AI 생존 지도: 질문 자본가의 시대'로 바뀌었으니 말이죠.

 

편집자가 직접 기획하고, 작가를 섭외하고, 교정을 보고, 진행을 하고, 홍보물을 만들고, 마케팅을 하고 싶었었습니다. 그리고 그 출판물이 세상을 이롭게 하거나 놀라게 하거나 하고 싶었습니다. 물론 그렇게 한 책들도 있긴 있습니다만, 일반 단행본이 아니라 전부 번역서이거나 기술 서적들이었습니다. 출판업에 종사한 지 30년이 되어서, 그 꿈을 품으며 첫 직장에서 퇴사한 지 20년 만에 이제 그 꿈을 이루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여기에 그 배경을 적지 않을 수가 없었답니다.

오버하는 편집자

 

물론 어려운 점도 있었고, 황당한 일도 있었지만 아이디어 도출부터 오늘 이 순간까지 정말 신나게 일한 것 같습니다. 책을 만들면서 느꼈던 감회나 에피소드는 이후 다른 포스트로 알려드리고, 오늘은 다소 장황하게 적은 편집자의 이야기와 출간 기획서 공개로 끝을 맺겠습니다. 기획서는 여기까지 읽어주신 분들에게 드리는 작은 선물(?)입니다. 출판사의 기획서는 어떤 건지 궁금하신 분들은 살펴보세요. 출판사마다 양식과 구성이 다르긴 한데, 내용은 대동소이할 것 같습니다. 


출간기획서: https://docs.google.com/document/d/1zKibALih_gtHbQuND_hoLYRogTr7VC9qlv9K5IHN_Kw/edit?usp=sharing

 

여림재 출간 기획서 01_공개용

여림재 출간 기획서 01 기안자: 장OO 기안일 : 2025년 11월 18일 (일부 민감한 부분은 원본과 달리 OOO으로 처리하였습니다) 여림재에서는 다음 부류의 책을 기획한다. OOOOOOOOOOOOOOOOOO OOOOOOOOOOOOOOOOOO OOO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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